지명으로 풀어보는 대륙조선설
[국민의 소리]중앙대륙 고조선-중앙 대륙삼국-동양 대륙고려-동방 대륙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황제국의 위상과 역사는 사그라 들고 동북방 변방에서 우리는 존재한다.이제 옛 화려한 영광과 역사를 찾아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미래이자 숙명이다.조선의 몰락은 서양과 동양의 패권에서 희생량으로 전락한 것이다.동방의 강자 조선은 다시 일어서야 하며 서양 문명을 이기도 새로운 동양문명을 창조해야 한다. 그 웅홍한 장대한 시작은 한류에서 뜨겁게 타 오르고 있다. 이제 옛 것을 회복하는 다물운동이 벌어저야 한다. 잃어버린 역사와 정신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밝은 미래인 것이다.
대륙 조선이 망하여 한반도로 피난하는 과정
서북방의 위협
kbs 불멸의 이순신 자료화면에 나타난 여진족 | ||
서남방의 배신
명나라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어부지리 효과를 보고 양자강 이남과 상류지방에 머무는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 양자강 하류지방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전통적으로 동이족과 서이족은 형제관계를 통한 친선 교류의 나라였으며 중국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을 서이족인 한족에게 한번도 빼앗기지 않은 황제국의 위상을 대대로 지켜왔다. 황하강 일대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을 중심으로 동양 역사의 주도적 역활을 해온 것이다.서이족은 남서방이나 서방 또는 남지나 해를 기반으로 하는 변방의 열국에 지나지 않았다.
동남방의 위협
왜구가 실제 전투를 하는 상상도 | ||
왜는 해양세력을 말한다.왜(倭)는 외(外)이며 바깥을 의미하며 여인국을 의미한다.광동성과 복건성 그리고 동남아 일대를 대상으로 해적질을 하는 도적때이며 왜구라는 별칭으로 존재하였으며 일본과 또 다른 분류를 하고 있다. 일본이 왜가 아니며 단지 대륙왜의 근거지를 일본왜의 근거지로 바뀌는 것 이외는 없다.왜는 조선국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표현한 것이다.즉 지방 체계로 보면 도 관찰사의 지위이며 지방 호족의 왕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상한 명나라와 이상한 조약이 체결되는데 일본이 점유한 탐라를 주고 조선이 점유한 대마도를 맞교환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탐라는 제주이고 대마도는 쓰시나 섬이 아니다.탐라는 대만이고 쓰시마는 일본인 것이다.즉 대륙왜가 일본왜로 쫓겨 들어갔지만 왜는 일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임진 왜란 당시에 일본은 해양도 소속이며 부속 도서일 뿐이다.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은 교역이 거의 없는 변방이였으며 왜구들이 해외 포르투칼 세력과 해석과 해양 세력의 엽합을 통해 대륙 조선을 정벌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완전 할양 받은 일본은 덕천가강에 의해 에도막부 [江戶幕府(강호막부)]가 열린다. 강호라 불리운 것은 양자강 일대를 형성한 대륙 왜 세력이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붕괴시키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키고 다시 조선을 침공한 것이다.두 번의 침공으로 조선은 완전 패망으로 전략하게 된다.
동북방의 피신
동북방인 간도와 한반도로 피신하는 과정은 서서히 여러 차례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1차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많은 유민이 대륙을 떠나 간도로 진입하게 되며 2차로 청나라의 오르도스 지방인 서안 북부 내몽고 지방을 점령하게 되고 북경을 위협하자 한반도로 이주하게 된다.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대동법과 사회제도가 크게 비뀌게 된다.또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많은 지리서가 출간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정치적 분열은 당파 싸움이다. 당파는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틀리는 것에 따른 국론 분열이 아니다.지방 호족간에 이견과 이합집산인 것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동인과 서인이 나누어 지고 다시 동인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데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 계기가 분조(分朝)활동이다. 그 시작은 광해군 때에 분조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직후 토지결수가 1/10로 줄어들게 된다. 급격한 세입감소는 지방 호족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쟁을 통한 인구 감소나 농사 지을 인구 감소가 아니라 중앙 조선 황제국에서 이탈하는 지방 호족이 늘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지방으로 이전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대륙 조선은 동방조선국(중국 동해안)과 북방조선(만주국과 한반도)으로 나누어 지게 된다.이 이후 본토 조선이 멸망한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명성황후 시해를 기점으로 추산된다.그 때까지 황후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황제국의 전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조선개국 480년에 한양시대가 끝나다!
북경과 서안을 기반으로 하는 한양시대가 끝나는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1895년 10월8일(양력) 명성 황후 시해(을미사변)를 기점으로 열리는 시기로 본다.대륙 조선이 망하자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조선인이 한국으로 배를 통해 육지를 통해 건너오게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거나 대량 학살이 된다.관동대학살 남경대학살. 중국 해남성 조선인 학살 사할린 대학살 그리고 만주 지방에 거주하는 많은 조선인을 이억만리 땅으로 이주 시킨다. 자세히 조사되지 않았지만 뿔뿔히 흩어지는 비극의 역사가 된 것이다. 수 많은 임시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충칭 임시정부-북경 임시정부-만주 독립국이 들어선 것이 그 실 예이다.가장 극심한 타격이 된 이유는 일본의 대륙 진출과 정복 지역이 정확히 대륙조선과 만주 한반도 조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일본이 동남아 제국을 침공한 것은 해양도 백제의 영역이며 해양조선의 영역이다. 중국 동부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를 침공한 것은 대륙조선과 만주조선의 영역이다.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성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경성이라고 부른다.우리나라는 그냥 서울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 것인가!
중국에서는 전신이 명나라와 청나라이므로 조선에 대하 잘 안다. 한양과 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에서 망한 조선인이 건설한 수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한성이라고 부른다.한성 중에 황제가 사는 곳이 한양인 것이다.한민족은 동대문을 낙양으로 서대문을 서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 동대문 서대문을 일본인이 강제로 부르게 해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의 동대문과 서대문으로 부르는 것은 일본인 일뿐..우리는 그냥 서대문을 서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대안문 간판이 현재는 대한문으로 바뀐 상태 | ||
덕수궁 대안문이 일제시대 대한문으로 바뀌었다.서울 한 복판에 일어난 사실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어떤 학자의 주장과 근거가 나와 얼마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물며 이런 상황인데 임진왜란 이후에 벌어지는 엄청난 대륙조선의 수난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이다.거기에 36년 동안 일제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이다.또한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탬이 비로서 일본에 의해 본격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건립 당시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에서 1906년 지금의 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뀐 것을 둘러싸고 여러 억측이 있었다. 왜 대안문이라고 했는가! 북경은 천안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安) 을 쓰는 것은 황제국에서만 쓰기 때문에 안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대한(大漢)과 대한(大韓)중에 대한을 쓴 것인가! 그것은 한나라의 피지배 민족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이거나 우리가 원래 한문을 쓰는 주도국이라는 의도인데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럽다. 다만 안북-안남-안동-안서를 쓰는 것은 대대로 환인제국 안파견의 정통맥이자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북경이 천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민족이 세운 건물과 말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왜 경성이라고 부른 것인가! 옛날부터 경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부른 것이다.경성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조선은 3경 5부제도를 유지해 왔다.즉 복수의 수도를 두고 그 수도를 지키는 주변 도시를 세우는 것이다. 한성을 둔다면 3개의 한성이 있고 그 중에 임금이 계시는 곳을 한양이고 나머지는 한성외 된다. 그것이 3경제도나 수도제도다. 그리고 그 수도를 중심으로 전후좌우 포진된 도시가 경성인 것이다. 경을 지키는 성이 경성이며 양을 지키는 성이 한성인 것이다. 경성이라고 하는 것은 3개의 성을 지키는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왜 서울이라고 했는가! 새로운 울이기 때문이다.새로운 터전기반이기 때문이다. 즉 변방의 한반도 주도세력이 이주한 것에 불과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도 조선인이 살았지만 주도세력이 대량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해방을 전후로 하여 엄청나게 서울로 들어 온 것이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은 강북 일부를 제외하고 허허 벌판이였으며 논과 밭이 가득한 한적한 도시였을 뿐이다. 조선 500년을 이어온 수도가 아닌 그저 경성이였다.현 경복궁에 완벽한 왕궁이 있는데 무슨 소리며 조선 개국시기부터 건설한 대들보 상량 기록과 흔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 할 수 있다. 고려 말 강화도 천도가 임시로 되는 계기가 경성에 왕궁이 들어선 내력이다.즉 강화도가 한반도인 것이다.고려 역사에서 강화도 섬은 한반도 이며 대륙에는 한반도를 섬으로 인식한 것이다.그래서 간도도 사이섬이라 하여 대룩을 섬으로 본다. 동쪽 바다에 작은 섬 황하강(한강) 하류에 작은 섬이 강화도인 것이다. 강화도가 천혜의 피난지인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한반도 대룩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완전 분리돤 지역이다. 그리고 그 위는 장백산맥으로 험난하게 장막이 처진 상황이다. 그리고 한반도 북부는 산이 많기 때문에 대륙을 통한 침공은 대단히 힘들다. 한반도 산은 대단히 특이해서 작은 산이 뽀쪽하게 여러겹 존재하여 대룩의 산과 다르다. 대륙의 산은 크고 웅장하지만 말이나 마차로 넘기 쉬운 구도를 가진다. 그러나 한반도 산은 불가능한 구조가 된다.그래서 그리고 경성(서울) 주변에 농사 지을 땅이 역사 기록에 나온 내용과 부합한다. 역사 기록에 보면 강화도 내에 여러 왕궁을 짓고 여러 절터를 세웠다고 나온다.현 강화도 내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를 보인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인 것이다. 한반도는 황하강 하류에 존재하는 작은 섬에 불과하며 날씨 맑은 산동 반도에서 산 위에서 보면 한반도가 작은 섬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대대로 대륙 조선국의 피난지이며 유배지이며 휴양지이며 변방으로 그 역활을 해 왔기 때문에 삼국과 고려와 조선의 역사 위에 유적도 그대로 연동돤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믿는 허상의 반도사관이자 식민사관의 실체이다. 현 한반도 지명은 1차적으로 대륙조선에서 건너와 반도 조선에 그대로 포게지게 되었으며 2차적으로 일제시대 의도된 목적으로 다시 포게지게 되었다.중국 본토는 명나라 이후 청나라 이후 중국정부 이후 여러 차례 지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물론 그 이전은 기원 후 5세기 전후로 하는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세력의 한반도 유입이 그것이다.또한 독자적으로 인도에서 일본과 한반도로 직접 들어온 세력도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대륙에 존재한 동이족의 흔적을 지우고 조작하는 혁명에서 비롯된 누적된 결과이며 일본에서는 식민지 교육을 통한 영구 지배 목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또한 대륙조선을 뺀 만주와 간도 지방의 땅도 러시아에게 연해주와 사할린을 빠앗기고 청나라에게 일방적으로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간도 협약을 맺은 것이다.
풍수를 바탕으로 그려진 한성지도 | ||
또한 조선말은 그 당시 말세와 같기 때문에 많은 도참사상이 유행하였다. 특히 남조선 사상이다.중국 본토에 남은 조선사람은 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학살의 대상이 되거나 강제 이주가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는 멸문이 된 것이다.그 중에 하나가 산맥이 끊어진 섬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었으며 십승지를 찾아라는 말도 있었다.비록 해방 이후에 남북전쟁의 아품이 있었지만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피난지이자 생존지가 한반도가 되었으며 그것도 남쪽이 되었다.이제 위대한 황제국 후손으로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다시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다시 찾아오는 위대한 동양문명과 한국의 문명이 열리고 있다.
중국 대륙조선 한양운이 480년으로 끝났으며 간도조선운이 1875년 이후 108년인 1983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서울 한양이 끝난 것이 아닌 중국 조선 한양운이 끝난 것이다.1984년이 새로운 갑자년이며 하원갑자 마지막 바퀴를 돌고 있다.
특히 국제법상 100년이 되는 시한을 넘겨서는 안된다. 일단 국제법을 통해 소송을 걸어 놓고 보아야 한다.간도 협약 만료시기가 2007년이니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문제 제기를 통해 차기 정부로 해결을 넘겨야 한다.[국민의 소리=임상현]
지명(地名)으로 본 대륙조선(大陸朝鮮)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의 기록을 보면,조선의 옛날 관청(官廳)의 명칭을 언급하고 있는데,그 명칭들이 하나같이 대다수가 현재의 중공 대륙에 있는 지명들으로 이루어져 있어 참으로 놀랍습니다.
조선의 옛날 관청(官廳)의 명칭으로서 문헌에 조차 전하지 않는 명칭들이 아주 많습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의 저자인 이유원(李裕元)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당대의 대학자요 문신(文臣)이었습니다.
이유원이 남긴 저서인 임하필기(林下筆記)의 기록은 이익의 성호사설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시대 학자의 문집입니다.
대륙조선의 그 실체를 규명하고 밝히는 근거로서 훌륭한 자료가 될것이라 생각됩니다.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
기내(畿內 경기)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고양(高陽)이고, 하간부(河間府)는 교하(交河)이고, 장평부(長平府)는 양성(陽城)이고, 용릉부(?陵府)는 남양(南陽)이고, 광릉부(廣陵府)는 양주(楊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부평(富平)이고, 영주부(永州府)는 강화(江華)이고, 청성부(淸城府)는 광주(廣州)이고, 남웅부(南雄府)는 시흥(始興)이고, 영창부(永昌府)는 영평(永平)이고, 운양부(?陽府)는 죽산(竹山)이다.
충청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대흥(大興)이고, 진강부(鎭江府)는 단양(丹陽)이고, 지주부(池州府)는 청양(靑陽)이고, 하중부(河中府)는 직산(稷山)이고, 운중부(雲中府)는 회인(懷仁)이고, 소흥부(紹興府)는 신창(新昌)이고, 공주부(?州府)는 석성(石城)이고, 광주부(廣州府)는 연산(連山)이고, 중경부(重慶府)는 충주(忠州)이고, 천주부(泉州府)는 영춘(永春)이다.
전라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청주부(靑州府)는 낙안(樂安)이고, 여남부(汝南府)는 광주(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진안(鎭安)이고, 연평부(延平府)는 남평(南平)이고, 염주부(廉州府)는 영산(靈山)이고,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이고, 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이고, 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이다.
경상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진주(晉州)이고, 광평부(廣平府)는 청하(淸河)이고, 회안부(淮安府)는 안동(安東)이고, 서안부(西安府)는 함양(咸陽)이고, 사명부(四明府)는 봉화(奉化)이고, 남강부(南康府)는 안의(安義)이고, 남평부(南平府)는 영천(永川)이고, 운안부(雲安府)는 양산(陽山)이고, 광주부(廣州府)는 남해(南海)이고, 광주부(廣州府)는 신녕(新寧)이고, 하원부(河源府)는 하양(河陽)이고, 태주부(泰州府)는 영해(寧海)이고, 운남부(雲南府)는 곤양(昆陽)이고, 합서부(陜西府)는 예천(醴泉)이고, 기주부(夔州府)는 양산(梁山)이다.
강원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산남부(山南府)는 지금의 양양(襄陽)이고, 형남부(荊南府)는 강릉(江陵)이고, 곡성부(穀城府)는 횡성(橫城)이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평산(平山)이고, 상주부(常州府)는 강음(江陰)이고, 엄주부(嚴州府)는 수안(遂安)이고, 회남부(淮南府)는 해주(海州)이고, 동주부(潼州府)는 안악(安岳)이다.
평안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안주(安州)이고, 진정부(眞定府)는 정주(定州)이고, 운중부(雲中府)는 삭주(朔州)이고, 천수부(天水府)는 영원(寧遠)이고, 임조부(臨?府)는 위원(渭原)이고, 혜주부(惠州府)는 용천(龍川)이고, 요동진(遼東鎭)은 의주(義州)이고, 대동진(大同鎭)은 철산(鐵山)이고, 동천부(潼川府)는 창성(昌城)이다.
함경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하중부(河中府)는 지금의 길주(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삼수(三水)이고, 천수부(天水府)는 회령(會寧)이고, 침주부(?州府)는 영흥(永興)이고, 광신부(廣信府)는 영풍(永?)이다.
"기내(畿內 경기)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고양(高陽)이고, 하간부(河間府)는 교하(交河)이고, 장평부(長平府)는 양성(陽城)이고, 용릉부(?陵府)는 남양(南陽)이고, 광릉부(廣陵府)는 양주(楊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부평(富平)이고, 영주부(永州府)는 강화(江華)이고, 청성부(淸城府)는 광주(廣州)이고, 남웅부(南雄府)는 시흥(始興)이고, 영창부(永昌府)는 영평(永平)이고, 운양부(?陽府)는 죽산(竹山)이다."
위의 경기도의 행정구역의 보정부(保定府),하간부(河間府),장평부(長平府),용릉부(?陵府),광릉부(廣陵府)...등등은 한결같이 문헌상에서 생소한 행정구역 상의 관청의 명칭들 입니다. 그런데 임하필기에서는 이 명칭들이 옛날의 명칭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보정부(保定府)를 기록에서 보면,대원군이 임오군란 때 청나라로 잡혀가 3 년 동안 천진보정부(保定府)에 억류되었다고 합니다.
즉 대륙의 보정부는 천진(天津)에 있었다는 겁니다.
하간부(河間府)에 대해 상촌선생집 제57권의 기록을 보면,"주유한(周維翰). 호는 도우(韜宇)이고, 직례(直隷) 하간부(河間府)부성현(阜城縣) 사람으로 만력 경진년에 진사가 되었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간부(河間府)는 대륙의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지명 입니다. 장평부(長平府)는 산서성에 있는 지명 입니다. 용릉부(?陵府)는 기록에서는 한 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처음 용릉(?陵)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으며,용릉은 송 나라 주돈이(周敦?)가 살던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의 지명이라 합니다. 광릉부(廣陵府)는 조선의 기록에도 동일한 지명이 있으며,서안부(西安府)는 경기도 말고 전라도,경상도,함경도에도 같은 지명이 있어 대륙의 어디를 말하는지 분간하기 어렵지만,아무튼 서안부(西安府)는 현재의 대륙에 분명히 있는 지명 입니다.
영주부(永州府)는 임하필기(林下筆記) 제4권의 기록을 보면,"당나라 원차산(元次山 원결(元結))의 오대명석각(?臺銘石刻)은 호남(湖南) 영주부(永州府)에 있는데, 계강(季康)의 전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성부(淸城府)는 대륙에 있는 지명이며 조선의 기록에도 있는 지명 입니다. 남웅부(南雄府)는 대륙의 광동성에는 있는 지명입니다. 운양부(?陽府)는 경세유표 제12권의 기록을 보면,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지명임을 알수 있습니다.
충청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대흥(大興)이고, 진강부(鎭江府)는 단양(丹陽)이고, 지주부(池州府)는 청양(靑陽)이고, 하중부(河中府)는 직산(稷山)이고, 운중부(雲中府)는 회인(懷仁)이고, 소흥부(紹興府)는 신창(新昌)이고, 공주부(?州府)는 석성(石城)이고, 광주부(廣州府)는 연산(連山)이고, 중경부(重慶府)는 충주(忠州)이고, 천주부(泉州府)는 영춘(永春)이다.
순천부(順天府)는 조선의 기록에도 있고 대륙에도 있는 지명 입니다. 진강부(鎭江府)는 왕환일기(往還日記)의 기록을 보면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지명임을 알수 있습니다. 지주부(池州府)는 연행일기(燕行日記) 제4권의 기록을 보면, 강남성(江南省) 지주부(池州府)라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안휘성 지주부 입니다. 하중부(河中府)는 대륙의 산서성에 있는 지명 이며,소흥부(紹興府)는 절강성 紹興府이며,중경부(重慶府)는 사천성에 있는 지명이며,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곳 입니다.
그런데 충주(忠州)의 옛날 지명이 중경부(重慶府)였다는 기록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천주부(泉州府)는 복건성에 있는 지명 입니다.
전라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청주부(靑州府)는 낙안(樂安)이고, 여남부(汝南府)는 광주(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진안(鎭安)이고, 연평부(延平府)는 남평(南平)이고, 염주부(廉州府)는 영산(靈山)이고,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이고, 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이고, 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이다.
전라도의 순천부(順天府)와 충청도의 순천부(順天府)는 동일한 명칭이지만 그 지명이 서로 다른데 위치해 있음을 알수 있고, 이 또한 대륙에 있는 지명이며, 조선의 기록에도 있는 지명 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기록을 보면, 순천부(順天府)는 전라도에만 있고 충청도에는 없습니다. 또한 황당한 사실은 청주부(靑州府)는 조선의 기록에서는 충청도 지역에 속한 지명 입니다. 그런데 임하필기의 기록에서는 전라도 지역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남긴 그 배경에 대해 많은 연구와 고증이 요구 됩니다. 이 기록은 절대로 실수에 의한 기록이 아닙니다. 현재의 역사관으로 개편되기 그 이전의 기록이라 생각됩니다.
여남부(汝南府)는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지명이며,연평부(延平府)는 복건성에 있는 지명이며,염주부(廉州府)는 광동성에 있는 지명입니다. 임하필기에서 기록한 전라도 지역의 계림부(桂林府)는 확증적으로 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밝히는 기록 입니다.
물론 임하필기의 전라도 계림부(桂林府) 그 외의 기록도 훌륭한 기록 이지만,현재의 지나 대륙의 계림부(桂林府) 관련 자료를 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있는 금산사 라는 사찰이 지나 대륙에도 있는데 현재 지나 대륙의 금산사는 계림시(桂林市) 전주현(全州縣)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원의 "임하필기"의 기록에서는 전라도 지역의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기록이 아닐수 없습니다.
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기록에서도 제주도는 전라도 관할 이었습니다. 동평부(東平府)는 대륙에서 2곳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산동성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광동성 지역 입니다. 조선의 기록을 근거로 보면 지역적으로 광동성이 타당 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역사에서의 제주도는 광동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륙의 절강성 호주부(湖州府)에도 위의 기록처럼 장흥(長興)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임하필기의 기록은 대륙조선의 그 실체를 알수있는 핵심적인 문헌이라 생각됩니다.
경상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진주(晉州)이고, 광평부(廣平府)는 청하(淸河)이고, 회안부(淮安府)는 안동(安東)이고, 서안부(西安府)는 함양(咸陽)이고, 사명부(四明府)는 봉화(奉化)이고, 남강부(南康府)는 안의(安義)이고, 남평부(南平府)는 영천(永川)이고, 운안부(雲安府)는 양산(陽山)이고, 광주부(廣州府)는 남해(南海)이고, 광주부(廣州府)는 신녕(新寧)이고, 하원부(河源府)는 하양(河陽)이고, 태주부(泰州府)는 영해(寧海)이고, 운남부(雲南府)는 곤양(昆陽)이고, 합서부(陜西府)는 예천(醴泉)이고, 기주부(夔州府)는 양산(梁山)이다.
진정부(眞定府)는 하북성에 있으며,광평부(廣平府)도 하북성에 있으며,회안부(淮安府)는 강소성에 있으며,서안부(西安府)는 함양(咸陽)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대륙의 함양(咸陽)은 섬서성 서안에 있는 지명 입니다.
남강부(南康府)는 강서성에 있으며,남평부(南平府)는 복건성에 있으며,운안부(雲安府)는 사천성에 있으며,하원부(河源府)는 광동성에 있으며,태주부(泰州府)는 강소성에 있으며,운남부(雲南府)는 곤양(昆陽)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의 기록에서 운남이라는 지명이 조선의 지명이라는 기록조차 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대륙의 운남성의 성도(省都)가 곤양(昆陽)이라는 사실 입니다.
임하필기에서 기록된 조선의 옛날 지명을 통해서 운남성이 경상도 지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합서부(陜西府)는 예천(醴泉)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합서부(陜西府)에서 합(陜)이라는 글자를 보면 섬(陝)이라는 글자와 아주 비슷 합니다. 혹여 합서부(陜西府)가 섬서부(陝西府)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주부(夔州府)는 사천성에 있는 지명 입니다.
강원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산남부(山南府)는 지금의 양양(襄陽)이고, 형남부(荊南府)는 강릉(江陵)이고, 곡성부(穀城府)는 횡성(橫城)이다.
형남부(荊南府)는 강릉(江陵)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고증하여 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 납니다. "원사(元史) 지리지"를 보면,"唐荊州,復?江陵府。宋?荊南府(당나라의 형주가 다시 강릉부가 되었다. 송나라때 형남부가 되었다.) "
임하필기에서는 형남부(荊南府)는 강릉(江陵)이라 기록되었습니다. 조선 역대의 어느 기록을 보더라도 조선의 강릉(江陵)이 형남부(荊南府)였다는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임하필기에서는 강릉(江陵)의 옛날 명칭이 형남부(荊南府)였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임하필기와 원사 지리지를 통해서 알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당(唐)의 존재가 신라(新羅)였으며,송(宋)의 존재가 고려(高麗) 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임하필기의 기록을 토대로 해서 원사지리지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대륙조선의 실체와 더불어 진실한 역사의 면모가 보입니다. 곡성부(穀城府)는 산동성과 호북성에 있습니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평산(平山)이고, 상주부(常州府)는 강음(江陰)이고, 엄주부(嚴州府)는 수안(遂安)이고, 회남부(淮南府)는 해주(海州)이고, 동주부(潼州府)는 안악(安岳)이다.
상주부(常州府)는 강소성에 있으며,엄주부(嚴州府)는 절강성에 있으며,회남부(淮南府)는 안휘성에 있으며,동주부(潼州府)는 사천성에 있습니다.
평안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안주(安州)이고, 진정부(眞定府)는 정주(定州)이고, 운중부(雲中府)는 삭주(朔州)이고, 천수부(天水府)는 영원(寧遠)이고, 임조부(臨?府)는 위원(渭原)이고, 혜주부(惠州府)는 용천(龍川)이고, 요동진(遼東鎭)은 의주(義州)이고, 대동진(大同鎭)은 철산(鐵山)이고, 동천부(潼川府)는 창성(昌城)이다.
천수부(天水府)는 감숙성에 있으며,임조부(臨?府)는 감숙성에 있습니다.
혜주부(惠州府) 광서성에 있으며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화민국의 손문과 관련된 지역 입니다. 연려실기술 제16권의 기록을 보면 "무릇 요동진(遼東鎭)은 북경의 팔과 같은 것이요, 조선은 요동진의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을 보면 요동진(遼東鎭)과 조선이 별개로 독립된 세력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임하필기에서는 요동진(遼東鎭)이 조선의 의주(義州)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에서 알수 있는 사실은 연려실기술의 기록이 교묘하게 교정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연려실기술에서는 요동진과 조선이 별개의 세력이지만 임하필기의 기록을 보면 요동진은 평안도에 속한 개념이고 더 나아가 조선에 속한 개념 입니다.
그러므로 연려실기술의 원래의 기록을 추측하여 보면,"무릇 평안도는 조선의 팔과 같은 것이요,요동진은 평안도의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륙 자체가 조선임을 말하는 기록인데 이를 왜곡해 요동진과 조선이 별개의 세력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대동진(大同鎭)은 산서성 대동시에 있고,동천부(潼川府)는 사천성에 있습니다.
함경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하중부(河中府)는 지금의 길주(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삼수(三水)이고, 천수부(天水府)는 회령(會寧)이고, 침주부(?州府)는 영흥(永興)이고, 광신부(廣信府)는 영풍(永?)이다.
하중부(河中府)는 산서성에 있고,침주부(?州府)는 호남성에 있고,광신부(廣信府)는 광서성에 있습니다.
더 많은 연구와 고증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위의 임하필기에서 밝힌 옛날의 지명의 절대 다수가 현재의 문헌에서 전하지 않는 기록들 입니다. 또한 임하필기에서 밝힌 옛날의 지명의 절대 다수가 현재의 대륙에 존재해 있습니다.
우연도 한 두번이면 믿을수 있지만 이 처럼 조선의 옛날 지명의 절대 다수가 대륙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는 것은 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의 기록 입니다.
임하필기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조선의 각지방에 관한 기록과 대륙측의 기록을 비교 검토해 보면 좋은 연구 성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세종지리지 대륙 조선 지도
준비자료
①동국
조선의 다른 이름은 지리지 서문에 나와 있듯이 지형적으로는 동국東國 즉 동쪽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地理志 서문〉東國地志, 略在《三國史》
동국의 의미는 현 한반도 지형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고 대륙(큰 육지)의 지형중, 중국 곧 대륙의 중앙지역을 중심으로 오른쪽 지역을 동국이라고 하는 것이며 현 한반도의 지역은 동국의 지극히 작은 지역 전체 동국의 1%도 안되는 지역입니다 일제 식민 사핮자들에 의하여 역사가 왜곡 조작되어 대륙의 동쪽지역이 현 한반도로 축소된 것이며 대륙의 서쪽 변방에 있었던 당 청 명등이 중국이 되어 마치 대륙 전체를 지배한 듯이 조작한 것입니다
②백두산, 대령산맥. 철령-동국(조선)의 기본 산맥 줄기
㉠평안도의 준령이 백두산에서부터 기복하여 남쪽으로 철령까지 뻗쳐 있어, 천여 리에 긍하며 북쪽은 야인의 땅에 연한다(함길도)
㉡남쪽은 철령으로부터, 북쪽은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1천 7백 여 리이다.
동서로 대산과 대해 사이에 끼어 있어서, 넓고 좁은 것이 같지 아니하여, 어떤 데는 수백여 리가 되고, 어떤 데는 6, 70리가 되는데, 오직 갑산두만이 대산의 서북쪽 바깥에있다(함길도)
㉢서북면. 동북면. 북계. 계수관. 관방. 만리장성, 대해. 해. 철령. 영동. 영서. 영남. 호남. 강남. 각 대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의 경계. 중심지역 - - - - - -.
③각도, 각 대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의 경계. 중심지역 - - - - - -.
이천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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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세종지리지의 내용만 바탕으로 지도를 그린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리지의 리 보 척의 길이 단위를 현재의 길이로 정확히 알 수 없고 , 지리지에 기록된 각 도 및 군 현의 경계거리가 불명확하고 또 지리지에 기록된 각 거리가 정확한지 알 수 없으므로 세종지리지의 내용만 참고로하여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실제로 지리지의 방위와 각 지역사이의 거리를 참고로 그려보면, 동서남북으로 표현된 각지역은 실제 지형에서는 다각형이 아니라 아주 불규칙한 다양한 형태의 경우이므로, 사실상 지리지의 4방위와 각거리를 가지고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각 경계거리가 아주 정확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상하좌우의 엄청난 오차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단히 많아 그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⑤지도를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대륙을 답사하여 실제 지명 확인후, 확인된 지역을 중심으로 세종지리지의 내용을 참조로하여 그리는 경우뿐입니다
중국을 여행하시다가 단군 기자 사당등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 유물을 발견하시어 연락주시면 자료를 정리하여 올려드리겠습니다
세종지리지
www.koreaa2z.com
조선왕조실록편 세종실록 맨밑 세종지리지
대륙조선의 경계: http://www.haannim.net/GYEONGGYE.htm
더 찾아보기:
http://www.google.co.kr/#sclient=psy&hl=ko&newwindow=1&source=hp&q=%EC%9A%B0%EB%A6%AC%EB%82%98%EB%9D%BC+%EB%8C%80%EB%A5%99%EC%A1%B0%EC%84%A0+%EC%A7%80%EB%AA%85&aq=f&aqi=&aql=&oq=&pbx=1&fp=5ba1955c94e6adcc&biw=1419&bih=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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